[조규태의 교실단상 53] 왜 학교는 ‘미투’를 가르치지 않는가?

조규태 | 입력 : 2018/03/12 [08:24]

신학기가 되어 학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부산한 학교공동체에서 작은 균열이 생겼다. 선생님들 사이에 젠더감수성이 충돌한 것이다. 출석부에 적힌 이름의 순서가 발단이었다. 왜 남자부터 적어야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으니 이 관행을 바꾸어야한다는 일부 선생님들의 주장이었다. 다급해진 교무부장님이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고, 교감으로서 물이 지나갈 때 배를 띄우는 것처럼 이참에 ‘미투운동이 학교에서 젠더감수성 운동으로 전개되면 좋겠다 싶어하며’ 관리자로서 선생님들의 작은 문제제기에 찬성하고 감사를 전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반대하는 일부 여자 선생님들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난감하였다. 변화를 기대했지만 그 불편이 걸림돌이라니! 이것도 많은 논의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구나!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이 날 문득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났다. 나도 김지영처럼 입을 닫고 귀를 닫아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김지영을 닮은 선생님들의 파워가 만만하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우리 사회의 김지영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3월 초 우리 학교의 출석부 문제는 학교공동체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 전반을 진단하는 바로미터라는 생각과, 출석부는 수 많은 젠더 문제 가운데 빙산의 일각이라는 현실의 벽을 느꼈다.
 
어제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그 빙산의 일각을 다시 느꼈다. 올해 평가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결과중심 평가에서 과정중심 평가로 바꾸는 회의였다. 회의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져서 그런지, 선생님들은 가슴에 쌓인 하소연을 길게 이어갔다. 지필평가를 통하여 줄을 세우고 60점 미만 학생을 부진아라는 낙인을 찍어 특별보충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관리하며, 일반화, 규격화된 평가의 틀 때문에 평가의 본질을 잃게 되는 사례 등등 지금까지의 관행처럼 이어진 평가에 대하여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소통하며 평가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문제점이 처음 이야기된 것은 아니지만, 진실을 말하는 사회분위기때문인지, 문제제기들이 사회적 요구로 다가왔다.
 
평가의 본질은 성장이라고 공감하면서 규격화된 평가를 비판했지만, 비판의 언어 끝에 남긴 여운은  '변화가 가능할까'라는 불안과 의구심이었다. 100이 있다면 그 중 50정도 바뀔 수 있을까? 수면아래 변화에 대하여 저항하는 큰 고정관념과 관행의 힘이 만만치 않음을 말은 안해도 서로가 심정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속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 토로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회가 기득권으로 저항하면 학교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몸살을 앓는다. 지금까지 페이퍼(문서, 행정)에 매몰되어 교사는 사람(학생의 성장)을 보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교육이라는 책무를 망각하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학교현장은 평가계획, 평가문항, 평가결과통보 등 일련의 과정이 규격화, 일반화라는 고정관념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사람보다 페이퍼의 하자(문제)가 생기지 않아야 부끄럽지 않다는 잘못된 상식이 우리의 의식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관념을 우리는 모더니즘이라고 부른다. 모더니즘은 일반화, 산업화, 기계화가 특징이다. 이것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작업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의 자유를 국가발전이란 미명 하에 시민성을 옭아맨 지 오래다. 우리 사회 전반의 왜곡된 감수성은 오래된 속박의 결과이다. 놀랄만한 성폭력, 성추행이 일상화된 것을 최초로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미투운동이었다. 이것은 탈일반화, 탈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할 시점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운동이 진정으로 완성되려면 교육개혁운동으로 발전되어야할 것이다. 개인미디어와 방송에서 시작되어 우리 사회 곳곳으로 들불처럼 번지지만, 이것이 교육이라는 여과장치를 거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안전불감증처럼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한민국이 혁명적으로 발전하려면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이 어려서부터 이루어져야한다. 세계 여성의 날 아침에 82년생 김지영을 다시 꺼내 읽으며, 학교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여성운동의 상징인 빵과 장미을 빼빼로처럼 관심을 끄는 깨어있는 분위기가 일어났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돕지마세요. 우리 일이잖아요.” 라고 쓰여진 김지영 앞치마를 입고 이렇게 해볼까! 선생님들이 먹은 커피잔을 설거지하는거야! 누군가 이렇게 질문하겠지. ‘교감선생님 그 앞치마 뭐예요?!’라고.

▲ ▲조규태 선생님 © 오산시민신문

 

 

 

 조규태

오산 고현초등학교 교감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