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14] 조조와 제갈량의 인재 활용술

조조(曹操)의 용인술(用人術)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했다 (9)

오산시민신문 | 입력 : 2018/04/05 [13:22]


조조에게는 여러 모사가 있었지만 정세를 꿰뚫는 분석으로 전투 때마다 결정적인 지략을 제공한 곽가(郭嘉)가 또 있었다.  

한조 말기 조조는 중원 일대를 평정한 다음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상(袁尙)과 삼군의 오환(烏丸)을 토벌하여 후환을 없애려 했다. 그의 수하에 있던 여러 장수들은 유표(劉表)가 유비를 보내 허창을 습격하여 조조를 토벌하려 들 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조조의 모사 곽가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곽가가 조조에게 말했다.
“조공의 위세가 천하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오랑캐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믿고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이들을 기습 공격하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원소가 생전에 오환의 오랑캐들과 한인(漢人)들에게 모두 은덕을 베푼 바 있기 때문에 지금 원상 형제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조공께는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 청천, 기주, 유주 등지는 물론 사천의 민중들도 조공의 병력이 두려워 우리에게 투항한 것이지 정말로 조공께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오환을 토벌하여 합병하고 다시 남정(南征)하여 유표를 친다면 원상은 오환을 지원한다는 핑계로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입니다. 게다가 오환이 한 번 움직이면 한조의 백성들이 일시에 이에 호응하여 오환 선우에게 남침의 야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청천과 기주는 절대로 우리 땅이 될 수 없습니다.”


곽가는 잠시 멈추었다가 얘기를 계속했다.
“사실 유표는 공담가에 불과합니다. 그는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서 유비를 부려먹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비를 이용한다 해도 마음 놓고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중용하지 않았고, 이에 유비도 그를 위해 공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전군을 출동시켜 오환을 징벌하기만 하면 별로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조조는 이 말을 듣고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했다.


대군이 이현에 다다랐을 때, 곽가가 또다시 건의를 올렸다.
“속전속결을 위해선 군용물자를 이곳에 남겨두고 소수의 병력으로 군장을 가볍게 하고 주야로 내달아 기습공격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경기병을 이끌고 몰래 노룡새를 건너 곧장 오환의 주둔지로 쳐들어갔다. 오환의 군대는 갑자기 조조의 대군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싸움에 응했지만 결국 조조의 군대에 대패하고 말았다. 답돈(蹋頓)과 명왕 이하 장수들이 모조리 참수 당했고, 원상과 그의 형 원희(袁熙)는 멀리 요동으로 도망쳐 버렸다.

곽가는 이번 전투에서 조조에게 정확한 전략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여러 차례결정적인 지략을 제공했다. 그는 조조를 수행하여 원소를 물리쳤고 원소가 죽은 후에는 여양에서 조조를 도와 원담(袁譚), 원상 등을 토벌하면서 연전연승했다. 여러 장수들이 승세를 몰아 공격하자고 건의하자 곽가가 반대하고 나섰다.


“원소는 생전에 이 두 아들을 가장 사랑했지만 누구를 계승자로 세울지는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곽도(郭圖)와 봉기(逢起)가 그들의 모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 싸우면서 이간질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서둘러 공격하면 둘이 서로 힘을 합쳐 대적할 테니 잠시 공격을 미루고 차라리 형주로 남하하여 유표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두 사람의 권력쟁탈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 사이에 내분이 발생했을 때 출병하여 공격하면 틀림없이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조조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군대를 몰아 남정에 나섰다. 조조의 군대가 서평에 이르렀을 때, 과연 원담과 원상은 곽가의 예견대로 기주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원담은 원상에게 패한 후 평원으로 철수하여 신비(辛毗)를 보내 조조에게 투항 의사를 밝혀왔다. 조조는 즉시 회군하여 그를 구해준 다음 다시 남피로 가서 원담을 공격함으로서 기주를 평정할 수 있었다.

원상이 요동으로 도망치자 조조는 그를 악착같이 추격했지만 길이 너무 멀고 도처에 황무지와 모래밭이 이어져 있어 행군이 여간 고되고 힘든 게 아니었다. 이때 중병이 들어 조조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곽가가 조조에게 말했다.


“요동성에 도착하셔서 곧장 공격을 강행하시면 안 됩니다. 먼저 강공을 펼치면 요동왕과 원상이 힘을 합쳐 필사적으로 반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 아래에 진을 치고 기다리시면 요동왕이 스스로 원상을 주살하고 투항해올 것입니다..”

요동성에 도착한 조조는 그의 말대로 성 아래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여러 장수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조조의 얼굴에는 느긋한 미소가 번졌다.

조조가 요동에서 돌아와서 보니 곽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조조는 천하의 모사를 잃은 것이다. 곽가는 정말 하늘과 땅을 두루 꿰뚫은 뛰어난 지략을 갖춘 인물이었다. 당시 전국의 정세에 대한 그의 분석은 귀신도 울고 갈 정도였다. 그가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면 조조가 천하를 평정하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계속)

 

필자 :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서울일보 수석논설위원) j64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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