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김치를 볶으며 - 성백원 시인

오산시민신문 | 입력 : 2019/01/02 [12:04]

 김치를 볶으며

                         

                               성백원

 

가을걷이에 지친 몸이
11월 마지막 날 아끼던 휴가를 냈다
팽팽한 끈이 느슨해지도록 긴 잠에 빠졌다
몸은 아파도 뱃속은 출항을 기다리는 어선
지인의 정성을 풀어 김치를 볶는다
냉장고를 탈출한 들기름
냉동고를 벗어난 오래된 목살
무모하게 시도한 비책에 진땀으로 이뤄낸 성취가 무너졌다
이미 드러낸 맛에 기세 좋게 들이댄
창작의 길에서 능구렁이를 만났다
새로운 도전에 따라다니는
일상화된 좌절의 여운이 거실을 채운다
불안한 덧셈은 맛 앞에 고개를 숙이고
뜻 모를 나눗셈은 곁눈질로 움츠린다
모국어를 잃어버린 문장은
한 장 남은 달력으로 스며드는데
언제쯤 제대로 김치를 볶을 수 있으려는가

 

▲ 성백원 시인     © 오산시민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