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병훈 칼럼 14]이봉열의 '공간여정(Voyage with Space)' 회화

도병훈 | 입력 : 2017/11/30 [23:26]

지난 달 《공간 여정(空間旅程)》을 주제로 한 이봉열 선생의 개인전이 서울 어느 화랑에서 열렸다. 그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에 두 번이나 가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시간에 쫓기듯 다녀 왔는 데다, 그럼에도 몇 몇 작품들이 특히 마음을 끄는 부분이 있어 한 번 더 전시장에 가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전시장에 가 보기 위해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광장으로 올라왔더니, 올 가을 내내 유난히 하늘이 푸르던 맑은 날과 달리 늦가을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광화문 뒤 북악산과 낙산은 선염으로 그린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서촌의 인왕산은 겸재의 인왕제색, 즉 비 개인 인왕산과 달리 겨우 산의 형체가 보일 듯 말 듯 했지만 그 존재감은 형언할 수 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80평생 동안 일곱 번째의 이봉열 개인전 전시장에 들어가서는 이전과 달리 충분히 시간을 갖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전시장에는 1970년대 이후 격자 구조 작품, 1980년대의 기하 추상작품, 화면에서 직선적 기하학적 요소를 지워버린 1980년대 후반 이후 최근 작품까지 20여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두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층과 긴장감을 보여주는 일관성이 있으나 작품은 시기마다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듯한 차이점이 미묘하게 드러났다. 특히 갈필 같은 목탄 자국들이 화면과의 섬세한 만나면서 그 떨림까지 표현한 듯한, 그래서 눈으로 만지듯 촉각적으로 와 닿은 최근 작품들인 〈무제 공간〉 연작들은 미세한-그만큼 무한감을 주는 – 층으로 드러나는 회화적 완성도로 감각의 근저에 닿는 느낌을 갖게 했다.
 
나 또한 대학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대학원 재학 때까지 이와 유사한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특히 〈무제공간 –174〉는 색감, 물감의 층을 만드는 방식, 캔버스 위에 연필로 드로잉하는 것까지 청년 시절, 나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더 심화된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버렸다. 재료와 물성적 문제, 그리고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라는 문제로 정작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 만일 아래 인용처럼 자신의 작업에 대한 진솔한 진술을 접했더라면 작품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일도 있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듯이 작가마다 양식 면에서 다 다를 수 있겠지. 내 경우에는 캔버스와 재료가 부딪혔을 경우에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심상을 순수한 측면에서 풀어나가는 거지요. 보는 이가 어떻게 보는가는 이차적인 문제겠지요.”
 
‘공간에 스며든 선이거나, 가냘픈 흔적으로만 있는 선’을 보여주는 그의 그림이 맑은 종소리의 긴 여운처럼 다가왔다. 선사시대 이래 회화는 당대 트렌드를 넘어선 어떤 본연의 특성이 있다는 듯 말이다. 두 번에 걸쳐 노대가의 ‘공간여정’이 담겨 있는 화폭을 보며 간절한 그리움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그간 거친 숨결이 야기한 그림들의 미진한 부분들이 상처의 흔적처럼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봉열의 화면은 오로지 회화로서의 완성도만을 목적으로 하는 추상화일 수 없다. 그렇다면 이토록 타자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몸짓으로 다가올 리가 없지 않은가? 살아가는 것은 결국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문제임을 이봉열의 화폭을 매개로 오랫동안 전시장에서 음미하다가 전시장을 밖을 나오니 여전히 겨울을 재촉하는 듯한 늦가을비가 일순 장맛비인 듯 세차게 내렸다. 광화문 뒤 북악산과 옆의 인왕산이 시시각각 더욱 묵직한 묵색으로 다가왔다.

 

▲ 도병훈 미술작가  ©오산시민신문

 

 

 

 

 

 

도병훈 (미술작가/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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