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엔군 최초전투지 죽미령 평화공원 개장 축하

오산시민신문 | 입력 : 2019/10/21 [14:33]

오산시는 호국도시에서 평화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6.25전쟁이후 오산은 죽미령전투현장에 유엔초전 기념관(UN初戰紀念館)을 세워 지역주민과 학생 군인들이 참여하는 호국의 학습장 체험장으로 활용해 왔으며, 최근에 추가로 호수, 산책로, 평화학연구 등을 보강하여 평화공원으로 개장한다.

 

▲ 유엔평화공원 기념관 조감도    © 오산시민신문


오산은 국제적인 도시다. 현재 유네스코 교육도시로 선정되어 있지만, 뼈아픈 과거를 품고 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이 그것이다. 두 전쟁은 국제적인 전쟁이였고, 그 전쟁 소용돌이 속에 오산이 있었다.


임진왜란직후 1593년 2월 초, 오산 독산성에 조선의 권율장군과 왜군이 서로 대치중 왜군이 권율장군에게 물을 한 지게 주자, 권율장군은 성(城) 높은 곳에서 흰쌀로 말을 목욕시키는 행위를 연출했고, 왜장은 이것을 보고 철수하였다. 왜군은 권율장군의 기만술에 속아서 퇴각했고,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1950.6.25전쟁이 발발후인 7.5(수) 08:16분부터 14:30분까지 오산 죽미령일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유엔군으로 파견된 스미스 특수임무 1개 대대(大隊)가 전차를 포함한 적 1개 사단(師團)과 첫 전투를 벌였다. 비록 6시간 14분 동안이지만 적의 남침을 지연시켰고 쌍방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유엔군이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희생시킨 첫 전투였다.


양 전투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정전 및 휴전협정시 전쟁피해국인 우리의 전쟁의지를 무시하고 가해국(일본, 북한)과 지원국(명, 유엔군/중국)들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체결했다. 국력의 약함을 통감(痛感)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우리나라는 전쟁지원국(명, 유엔군)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나라를 유지하고 있는데 강대국(强大國)과의 우호적인 관계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았다. 셋째 두 전투의 중심에 오산이 있었다. 즉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한양으로 북상하는 중심에, 6.26전쟁 때는 북괴군이 부산으로 남침하는 중심에 있었다. 즉 전쟁의 요충지요, 목같은 장소였다.


이런 강약점을 뼈 속 깊이 알고 있는 오산시에서 6.25전쟁의 현장인 이곳 죽미령에 정전후 60년이 지난 2013.4.23일에 유엔군초전 기념관을 개관하였고 매년 약 3천명이 방문을 하였으며, 전쟁체험박람회, 전쟁사연구, 스미스부대추도식, 나라사랑교육, 평화교육장 등으로 활용해오다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고자 기념관을 평화공원(平和公園)으로 확장하고 오는 10.24(목) 개장한다고 한다.


6.25전쟁과 유엔군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공간에서 올바른 역사관과 평화교육을 통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시도하는 오산시(烏山市)의 죽미령 평화공원 개장을 환영하며, 전쟁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호국공원(護國公園)에서 이제는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 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평화교육, 평화체험(平和體驗), 평화운동의 시발점,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이상구(오산 중앙동 예비군동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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